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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이름의 자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이채원 작가

편집실 · 사진 안호성

곧은 대나무인 줄 알고 다가가보니 빌딩이다.
물과 바람처럼 일정한 형태 없이 깎인 거울인가 했는데, 그 안에 빌딩 숲이 있다.
또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있다. 도시이자 자연인 작품과, 도시인이자 자연인인 내가 하나의 작품이 된다.
장자(莊子)가 말한 ‘호접몽(胡蝶夢)’처럼 세상은 자연을 꿈꾸는 도시일지도, 도시를 꿈꾸는 자연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이것은 작가 이채원이 만든 세계라는 사실이다.

‘죽림’ 시리즈는 대나무 모습이 프린트된
스테인리스스틸을 돌이 받치고 있는 형태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자연은 도시에 많은 부분을 내어주었다. 흙이 밟히던 길에 시멘트가 채워지고, 나무가 자라던 자리에는 새로운 형태의 숲이 들어섰다. 아파트와 건물이 빽빽이 자리한 ‘빌딩 숲’이 그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 살펴보면, 도시는 여전히 거대한 자연의 일부다.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자연이 존재한다. 도시와 자연은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없고, 각자도생(各自圖生)할 수도 없다. 필연적으로 함께 살아가고, 함께 진화를 추구해야 한다. 이채원 작가는 도시와 자연, 인간의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 가능성을 찾아내 작품에 담는다.
“저는 아파트 단지가 끝없이 이어져 있는 동네에서 자랐어요. 빌딩 숲이 제게는 가장 익숙한 풍경이었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일상에서 보던 빌딩 숲이 자연 어딘가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어요. 그 계기로 ‘아파트 숲’에 대한 경험을 형상화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요.”
작가의 전시명과 동일한 ‘도시의 숲’은 말 그대로 도심에 조성된 숲이기도 하고, 건물로 가득 찬 아파트 숲이기도 하고, 베란다와 같은 개인 공간에 가꾼 나만의 숲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채원 작가에게는 이 모든 숲이 삶을 품은 공간이자, 함께 자랄 수 있는 공존의 세계다.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
이채원 작가의 작품은 보이는 형상(形像)에서부터 도시와 자연의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작품에 쓰이는 소재는 건축 재료로 익숙한 스테인리스스틸과 자연 재료인 돌이다. 대나무 모습이 프린트된 스테인리스스틸을 돌이 받치는 형상을 띠고 있다. 이채원 작가의 ‘죽림(竹林)’ 시리즈는 수직적이고 마디로 이루어진 형상으로, 가로수와 함께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대나무 숲과 연결 지어 표현했다. 돌 틈으로 자라 나온 나뭇가지인 듯 혹은 애초에 한 몸인 듯 인공물과 자연물은 서로에게 기대어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도시를 품은 자연, 포스트자연(Postnatural)으로 확장한 자연물과 인공물의 공존과 진화를 이야기한다.
‘죽림’ 시리즈가 우리 삶을 둘러싼 도시를 외부에서 바라본 형태라면,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 시리즈는 도시 속 우리 삶의 내부, 도시 속에 들어온 자연을 말한다. 팬데믹 이후 여행 등 바깥 활동은 어려워지고, 재택근무가 늘어나는 등 도시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집 안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자연에 대한 그리움은 집 안 곳곳에 또 다른 자연 공간을 탄생시켰다. 작가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입체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그것이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 시리즈다.
“팬데믹 이후 반려 식물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중 몬스테라 알보를 키우는 사람들은 초록색과 하얀색이 혼합된 아름다운 잎사귀 무늬를 만들기 위해 LED 등을 활용하며 자연스러운 생육 환경을 조성하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몬스테라 알보’는 이러한 도시 속 자연의 발견과 공존을 위한 고민에서 출발합니다.”

이채원 작가의 전시는 10월 16일까지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진행한다.

도시와 자연, 인간의 공진화를 꿈꾸며
도시와 숲이 함께 진화하듯 이채원 작가도 작품과 함께 진화한다. 초기 ‘죽림’ 시리즈는 초록빛 대나무 형상의 아파트 숲으로 표현되다가 점점 다양한 도시의 색, 네온 컬러를 입기 시작했다. ‘죽림’ 작품 주변 배경에 스테인리스스틸을 배치해 도시 스카이라인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것이 마치 거울과 같은 효과를 주어 관람객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 도 마찬가지다. 바람·물과 같이 형태가 일정치 않은 자연의 모습으로, 때론 식물 잎사귀 모양으로 제작된 스테인리스스틸과 돌이 서로를 받치며 공존한다. 거울 역할을 하는 스테인리스스틸 위에는 ‘죽림’ 시리즈에서 엿보았던 아파트 숲이 프린트되어 있다. 그래서 관람객은 작품 가까이 가는 순간 작품과 하나 된다. 도시인이자 자연적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미 이채원 작가의 작품이 될 가능성을 지닌 것일지도 모른다.
요하지만, 관람자의 시선 또한 배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는 관람자의 몫이니까요. 너무 난해하거나 복잡하게 작품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 건 그 때문이에요. 저는 앞으로도 도시 안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공감할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ONSO ARTIST OPEN CALL 2023’의 참여 작가로 활동하게 된 것도 이채원 작가에게 좋은 성장 포인트이자 관람객과 소통할 기회가 되었다. 지난 9월 9일에는 ‘ONSO PICNIC 2023’과 연계해 ‘자연을 담는다’를 주제로 직접 유리 화분을 만들고 그 안에 개운죽을 심는 드로잉 테라리움(drawing-terrarium)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했다. 이채원 작가는 “재단을 만나고 포트폴리오가 풍성해진 기분”이라며 웃는다.
“자연과 인간의 공진화를 말하는 재단과 제 작업의 방향성이 일치해 즐겁게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지원금 덕분에 비용적인 부담도 덜었고요. 무엇보다 거대 도시 서울의 중심인 명동에서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이채원 작가는 올해부터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작가로서 작품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바쁘지만, 후배 작가들에게 실전에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결심했다. 10월에는 노원문화재단 주민 참여형 ‘빛조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주민과 함께 하는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처럼 이채원 작가는 계속해서 사람들과 더불어 진화해 나갈 것이다. 도시라는 이름의 자연 속에서 행복을 찾으며 말이다.

이채원, ‘죽림(竹林)’, 2021

이채원, ‘죽림(竹林)’, 2021

이채원, ‘죽림-도시의 숲’, 2023

이채원, ‘죽림-도시의 숲’, 2023

이채원, ‘죽림-도시의 숲, Bamboo Forest-Urban Forest’, 2023

이채원, ‘죽림-도시의 숲, Bamboo Forest-Urban Forest’, 2023

기억의 틈으로 들어오는 ‘환경보호’의 의미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도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달된다. 작품 ‘기다림’은 무언가 놓인 바닷가 풍경에 대한 기억을 묘사하고 있다. 그 무언가는 자신을 두고 간 사람을 기다린다. 아마 오지 않는다면 그 무언가는 땅속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의미를 잃어버린 물건은 쉽게 버려지고, 금방 썩지 않는 것일수록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버려진 의미의 운명이다. 작가는 현대사회의 환경문제가 “사람들이 쉽게 의미를 부여했다가 쉽게 거두는 생활과 소비를 하는 탓”임을 꼬집는다.
작품 ‘낯-Reflection’은 상호작용과 순환의 의미를 담는다. 캔버스 속 사람(面), 두 사람의 관계, 그 앞에 놓인 물은 서로가 서로를 비춰냄(reflection)으로써 연결된다. 겉으로 보기엔 일상의 풍경을 담아낸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혼자 존재하는 세상은 없다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행동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이는 결코 단편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물을 바라보면,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 내가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에요. 내가 한 행동이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내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죠. 환경문제를 대하면서도 우리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를 인식하고 각성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소정 작가는 “환경에 대한 생각과 메시지가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그것과 맞닿았고, 덕분에 ‘ONSO ARTIST OPEN CALL 2023’의 참여 작가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작품 활동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재단의 지원으로 부담 없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전시, 홍보, 포트폴리오 아카이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저를알릴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고요.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진행하는 여러 행사에 초대받을 때마다 온드림의 일원으로 대해주신다는 생각이 들어 소속감과 유대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억 수집가로서 제게 좋은 기억과 의미를 남겨주셔서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아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성장형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소정 작가의 작업 원동력은 기억과 의미에서 나온다. 이번 전시는 그의 기억 수집함에 기억 조각 여러 개가 새롭게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그 기억들이 김소정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고 다채롭게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