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menu

스타트업, ‘임팩트’라는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다

김정태((주)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이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약 4조 원 가치에 달하는 지분을 환경단체에 기부한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 회장

기업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임팩트 이코노미’가 업계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임팩트 이코노미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넘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하고,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 등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사회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임팩트 이코노미 시대, 스타트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스타트업, 새로운 고민에 직면하다
혁신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한 한 스타트업이 상장을 했다. 새로운 해외 고객과 적지 않은 규모의 계약을 앞두고 계약서와 부속 문서를 펼쳐봤다. 과거 유사한 계약을 할 때는 보지 못하던 질문들이 눈에 띄었다. “당신 회사의 탄소배출 저감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있다면 어떤 전략이 있는지 알려주시고 없다면 왜 없는지 설명해주세요” 질문 자체는 해석하기가 어렵지 않았지만, 왜 계약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탄소배출 저감’ 질문이 있는지 궁금했다. 실제 관련된 계획은 없는데, 그냥 ‘없다’라고 회신하면 되는 걸까? 스타트업 대표는 미묘한 이 질문 앞에서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이 사례와 같이 그동안 자주 쓰지 않던 언어나 요청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회혁신 및 지속가능 경영 컨설팅과 임팩트 투자를 하는 필자 회사도 해외 고객의 계약서를 확인하고 신기한 질문을 발견한 적이 있다. 컨설팅을 수행하고 이동하면서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에 대한 상쇄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문의였다. 필자 회사는 공유 오피스 및 임팩트 투자로서는 국내 최초로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방식으로 100% 재생에너지를 쓰는 ‘K-RE100’ 참여 기업이기에 그런 질문이 오히려 반가울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한때 지나가는 유행일까? 아니면 앞으로 비즈니스 전반적으로, 그리고 스타트업 모두에 적용될 이야기들일까?

비즈니스에 새로운 외국어가 추가되다
태어나서 새로운 외국어를 배울 때의 그 낯선 느낌을 기억할 것이다. 발음도 다르고, 문법 체계도 다르고, 언어를 만든 세계관도 다르기에 성인일지라도 마치 어린아이가 언어를 처음 배우는 경험과 흡사하다. 한국어가 그렇듯 “나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주어+목적어+동사)의 형식을 쓰다가 영어처럼 “I founded my own start-up”(주어+동사+목적어) 형식으로 말할 수 있기까지 많은 반복 학습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스타트업에 ‘임팩트’라는 생소한 개념은 이처럼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경험일 수 있다. 외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가는 찰스 다윈이 말한 “가장 적응을 잘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라는 교훈과도 연결된다. 요즘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말하는 ‘임팩트’란 그렇게 새롭게 배워야 할 언어가 되었다.
임팩트라는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먼저 우리가 살아갈 세계와 살아온 세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서울에 와서 지하철을 처음 탔던 때가 기억난다. 그 당시 지하철 승강장에는 스크린 도어가 없었고, 강렬한 전등을 켠 지하철이 몇 발짝 앞의 궤도를 따라 강한 바람과 함께 플랫폼에 들어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스크린 도어가 없는 지하철은 상상할 수 없고, 또한 그런 지하철에는 사용자들이 탑승 자체를 꺼릴 확률이 높다. 과거와 달리 현재의 안전 감수성과 혹시라도 있을 사고 방지에 대한 민감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는 고객을 비롯한 다양한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만족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 제품과 서비스의 일부 원자재가 아동노동(child labor)이나 비인권적 노동환경을 통해 마련되었다면? 내가 쓰는 제품과 서비스가 폐기되는 단계에서 해양 생태계 및 생물 다양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미세 플라스틱이 대량 배출되거나 토양오염 위험을 높인다면? 이는 고객만이 아니라 해당 기업 종사자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려 이탈을 하거나 잠재적인 인재들이 지원을 꺼리게 되며, 무엇보다 투자자는 미래 지속가능성에 대한 ‘빨간 신호등’으로 인지하고 투자를 철회하거나 보류할 수 있다. 스크린 도어 없는 승강장을 피하듯이 말이다.

포어시스에서 부산 강서구 평강천에 설치한 하천 부유 쓰레기 해양 유입 방지 시설(사진 제공: 포어시스)

포어시스에서 부산 강서구 평강천에 설치한 하천 부유 쓰레기 해양 유입 방지 시설(사진 제공: 포어시스)

임팩트라는 외국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기업
세계적으로 ‘임팩트’ 언어를 잘 구사하는 기업들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한국에서 특히 많이 알려진 기업은 바로 파타고니아(Patagonia)다. 지난 2022년 9월 이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라고 선언하며 약 4조 원 가치에 달하는 지분을 환경단체에 기부한 파타고니아. 삼성전자가 7위, 아마존은 8위, 애플이 10위를 기록한 올해의 미국인 선호 브랜드 순위에서 파타고니아는 압도적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아웃도어 관련 옷과 제품을 판매하는 파타고니아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사용하고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임팩트’를 관리한다. 물 사용량을 비롯해 투입되는 에너지, 그리고 옷이 제조되는 해외 공장의 환경 경영과 근로자의 공정한 급여 수준에 이르기까지 부정적 임팩트는 낮추고 긍정적인 임팩트는 지속해서 높여간다.
파타고니아는 임팩트 비즈니스의 전형적 사례다. 일반 비즈니스는 흔히 가치사슬(value chain)이라 불리는 기업의 본원적인 활동 단계를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연구 개발, 기획과 디자인, 원자재 생산과 조달, 가공, 제조, 판매, 관리, 폐기 등에 이르는 일련의 가치사슬 단계에서 손익계산서에 반영되는 매출·비용·부채 등을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임팩트 비즈니스는 이를 기본으로 ‘임팩트’를 더한다. 즉, 가치사슬 단계마다 존재하는 부정적 임팩트는 줄이고, 긍정적 임팩트는 늘려가며 그동안 손익계산서에 반영하지 않았던 (또는 무시했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러한 부가가치 창출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가치 상승을 비롯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관점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파타고니아의 임팩트 비즈니스는 세계 많은 기업에 영감을 주고 있는데, 그중 한 곳이 삼성전자다. 지난 2022년 삼성전자는 파타고니아와 협력해 미세 플라스틱 저감 세탁기를 출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세탁기 기술 위에 ‘미세먼지 저감’이라는 임팩트를 더하여 본격적으로 임팩트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임팩트 비즈니스는 세계 많은 기업에 영감을 주고 있는데, 그중 한 곳이 삼성전자다.
지난 2022년 삼성전자는 파타고니아와 협력해 미세 플라스틱 저감 세탁기를 출시했다.”

국내 스타트업도 임팩트 비즈니스로 기업과 함께
제주에서 시작한 ‘제클린’이란 스타트업은 그동안 국내 호텔 숙박업계가 관행적으로 폐기 처리해온 솜털 등 폐섬유를 재생하는 스타트업이다. 호텔 등 기업에 골칫거리가 되는 폐섬유를 활용해 탄소배출과 물 사용을 제한한 멋진 섬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섬유업계에 시작된 ‘임팩트’ 언어의 사례다. ‘고요한택시’ 라는 브랜드로 택시 플랫폼을 운용하는 ‘코액터스’는 유니버설 모빌리티를 표방하며 모빌리티 산업에서 임팩트 언어를 구사하는 비즈니스를 발전시키고 있다. 택시업계의 고질적인 드라이버 채용 문제를 해결하면서, 탑승객에게 쾌적한 경험을 제공하고, 이동권에 제한이 많던 장애인이나 교통 취약계층이 보다 쉽게 탑승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택시’도 제공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덕분에 창출되는 사회적 가치는 덤이다.
스타트업의 임팩트 비즈니스는 관련 산업계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를 통해 육성하고 있는 사회혁신 스타트업 ‘포어시스’는 해양에서 수거하는 자원의 염분 문제를 자체 개발한 포어소닉을 통해 높은 품질의 재생 플라스틱 원료로 탈바꿈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국내 사업본부와 협업해 폐어망과 폐로프 기반의 재생 플라스틱 및 현대자동차의 폐차 부품을 활용한 ‘보증수리 엔진 물류 운영용 포장재’를 작년 10월 개발한 바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라 일컫는 이런 방식의 협업을 통해 임팩트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스타트업은 ‘임팩트’라는 외국어를 절실히 내재화해야 하는 산업계와 협업하고, 공동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확률이 높다.

비즈니스의 새로운 외국어, 임팩트. 특정 영어 시험 성적을 올리듯 단기간에 속성으로 배울 방법은 없다. 오랜 기간 꾸준히 하는 것만이 정석인데,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오늘이 ‘임팩트’라는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일 것이다.

김정태

사회혁신가이자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대표. MYSC는 사회혁신 컨설팅과 액셀러레이팅, 임팩트 투자 전문 기업으로, 성장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며 꾸준히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을 찾아 투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