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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으로 자연을 초대합니다
김이린 작가
글 편집실 · 사진 전문식
우리는 자연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 사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자원은 물론,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안녕을 느낀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
그래서 김이린 작가는 우리 일상으로 자연을 초대한다.
백화점, 포도밭, 바닷가 등 나무는 작가의 초대를 받아 어디든 갈 수 있다. 소파에 앉아 쉬고, 이불을 덮은 채 눕고, 거울을 보고, 테이블을 가운데에 놓고 대화하며,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김이린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특히 나무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나무가 휴식하길 원한다. 김이린 작가는2016년부터 ‘휴목(休木)’ 연작을 통해 일상으로 초대한 나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간 19회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 단체전을 통해 꾸준히 작품도 선보였다. 물론 나무를 재미로 초대한 것은 아니다. 나무는 자연이며, ‘초대’는 작가만의 감사와 사과의 표현이다. 인간은 아주 오랜 시간, 그리고 지금도 자연을 지치고 병들게 한다.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하며 군림한 결과,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을 불러왔다. 작가는 고통받는 자연에 사과하고 위로를 전하고자 자연을 인간의 휴식처로 초대한다. 그리고 자연의 내밀한 언어에 귀 기울인다.
자연이자 인간인 나무
나무를 의인화한 기법은 동양적 자연관에서 비롯했다. 동양에서는 자연을 인간과 양분하지 않는다. 우리와 동등한 생명이며, 사고하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언제든 일상으로 초대할 수 있고, 어울릴 수 있다. 특히 나무는 모습조차 사람과 닮았다. 김이린 작가 작품 속 나무도 마찬가지다.
“나무는 곧 자연이에요. ‘겨울나무’, ‘나무야’처럼 동요 가운데 나무를 사람처럼 표현한 작품이 많듯, 우리가 가장 친근하게 여기는 자연물도 바로 나무고요. 저 역시 나무를 간결하게 표현할수록 그 모습이 사람과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표적으로 ‘해변의 나무’(The Tree on the Beach, 마대 천에 한지 콜라주와 혼합 매체, 130×130cm, 2020)에서 나무는 인간과 같은 방식, 즉 해변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것을 똑같이 경험한다. 우리가 자연에서 안정과 평온을 느끼듯, 자연 또한 또 다른 자연과 깊이 연결되어 안정을 찾는다. 인간 역시 그러한 나무를 보며 해변에서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린다. 따라서 작품 앞에 선 나는 인간이자 자연이며, 나무 또한 자연이자 인간이다. 캔버스 속 나무를 어떤 종류로 인지할지, 어떤 표정을 짓게 할지도 감상하는 이의 몫이다.

김이린 작가의 대표작 ‘해변의 나무’
(The Tree on the Beach, 마대 천에 한지 콜라주와 혼합 매체, 130×130cm, 2020)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자연의 색
김이린 작가가 소재와 주제만큼 중요시여기는 것이 있다. 바로 색(色)이다. 작가는 자연과 인간에게서 얻는 감흥과 심상을 모두 색으로 귀결한다. 달리 말해, 색은 세상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다. 김이린 작가는 평범한 일상과 주변 환경 속 색에서 영감을 받는다. 우연히 만나는 나무, 풀, 꽃, 햇살 등 모든 것이 그의 마음에는 색으로 스며든다. 특히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 등 오방색에 크게 매료되곤 한다. 작품 속에서 한국화의 선과 여백이 엿보이는 이유도 이러한 이력 때문일 터. 그리고 영감을 작품으로 옮기는과정에서 작가는 다시 한번 자연에 경외를 느낀다.
“작가마다 반응하는 시각적 요소가 달라요. 누군가는 구도, 누군가는 질감에 반응하죠. 저는 색이에요. 작품에서도 색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저는 색 선택과 배치를 통해 작품의 의미와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 합니다. 감상하는 사람도 제 작품을 통해 색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얼마나 다양한 색을 구현해낼 수 있는지 느끼면 좋겠어요. 제가 그러했듯 색이 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면 더욱 좋고요.”
작가의 색과 생각을 느낄 수 있는 전시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미래(A Sustainable Future for All)’를 주제로 한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예술 작가 공모에 선정되어 개인전을 준비하면서도 그는 “어떤 색을 쓸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공간에 꼭 맞는 전시를 선보이게 되었다. 실제로 온드림 소사이어티에 들어서면 하양·파랑 등 공간 내부 색상과 김이린 작가의 작품, 창에 비치는 자연까지 모든 것이 마치 오래도록 한 몸이었던 것처럼 조화롭게 느껴진다.
“전시 준비를 위해 처음 온드림 소사이어티에 왔을 때 제 눈에 블루로드(blue road)가 가장 먼저 들어왔어요. 그래서 푸른 구조물, 하얀 벽면 등과 매치가 잘되는 색감의 작품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해변의 나무’, ‘영화관에 간 나무’ 등을 전시 작품으로 골랐죠. 전시된 모습을 보니,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한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래도록 꿈꿔왔던 공간에서 전시하게 된 것도 김이린 작가에게는 기쁜 일이다. 그는 “자연을 일상으로 초대했듯 제 작품도 일상으로 초대받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온드림 소사이어티는 그가 꿈꾸던 공간이다. 햇빛이 듬뿍 들어오고, 관람객이 작품 옆에 앉아 자유롭게 대화하며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곳. 그 자연스러움이 좋다.

6월 24일까지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休木, DO RE MI FA SOL LA SI – 김이린展>이 열린다.

작품을 통해 감동과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김이린 작가
예술과 자연을 일상으로, 우리 곁으로
예술 작가 공모를 통해 창작지원금을 받으면서 색다른 형태의 작품도 시도할 수 있었다. 그간 캔버스에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평면 작업을 이어왔다면, 이를 확장해 조소(彫塑), 거울 등 입체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공 화합물인 물감으로 색을 표현하고 있지만, 제 작품의 밑바탕이 되는 것은 천이나 한지예요. 다양한 재료를 콜라주해 작품을 만드는데, 한지로 나무의 독특한 패턴을, 톱밥에 물감을 섞어 울퉁불퉁한 질감을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작품 안에 정말 나무가 들어가 있는 셈이죠. 앞으로도 환경과 관련한 여러가지 재료를 작품에 사용하려 해요. 이는 온드림 소사이어티 전시를 준비하면서 목표한 것이에요.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협업하면서 관계자분들이 아이디어를 주신 덕분에 더 나은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난 것 같습니다.”
또 김이린 작가는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협업하며, 예술 작가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에서는 개인전, 전시 홍보물 제작, 배포, 운영 등을 폭넓게 지원하는 것은 물론 이와 별도로 창작지원금을 제공해 작가가 연속성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여러 공모전에 지원해보았지만, 이번처럼 바라고 기대한 적이 있나 싶어요. 평소 일상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고 그 의미를 전달하고자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이번 공모를 통해 효과적으로 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감동과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겠습니다.”
우리 일상 곳곳에는 쉼표가 숨어 있다. 걷다 마주한 나무 그늘도, 잠시 스친 바람도, 포근한 소파도 모두 우리의 쉼표다. 김이린 작가의 노력으로 일상의 쉼표를 나무와 자연에 양보해주는 이가 더 많아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