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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에 관한
어느 도시 관찰자의 보고
황문정 작가

편집실 · 사진 조혜원

도시를 구석구석 돌아보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가지고 화수분처럼 이야기를 쏟아내는 황문정 작가.
어린 시절의 잦은 이사와 스코틀랜드에서의 유학 생활로 낯선 공간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호기심 많은 황문정 작가를 도시 관찰자로 만들었다. 긴 시간 도시의 면면을 되새김질해온 도시 관찰자는 전시 <After Flow>를 통해 “도시의 주인은 인간과 비인간 모두다”라고 말한다.

전시를 통해 황문정 작가는 “도시의 주인은 인간과 비인간 모두다”라고 말한다.

<After Flow> 전시를 통해 황문정 작가는 “도시의 주인은 인간과 비인간 모두다”라고 말한다.

비인간들에 관심을 두는 시각예술 작가
시각예술 작가 혹은 설치미술가로 불리는 황문정 작가는 개인전 <유사 도시 표본>을 TINC(This Is Not a Church, 이것은 교회가 아닙니다)에서 진행했고, 단체전 <대전 과학예술비엔날레: 2022 미래도시>, 대전시립미술관 등 수많은 전시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주로 인간의 생활 반경 안에 있지만 일상적으로 느낄 수 없는 도시 속 비인간들에 관심을 두며 자신이 목격한 풍경과 들은 이야기를 설치미술, 영상, 평면, 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는 황문정 작가. 그는 처음부터 설치미술을 한 건 아니었지만, 조소를 전공한 만큼 입체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설치와 조각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장소성에 있어요. 설치 작업은 장소 특성을 전제하기에 작품이 놓이는 공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흥미롭죠. 조각은 어디에 위치해도 그 자체로 작품이 되지만, 설치는 공간과 호흡해야 작품이 됩니다.”
황문정 작가가 공간이 자아내는 특이성을 즐겁게 포착하는 것은 어릴 적 경험한 잦은 이사와 한국과는 풍경부터 전혀 다른 스코틀랜드에서의 유학 생활 등 낯선 곳에 적응하고자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세밀히 관찰한 데서 비롯한다.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목가적 풍경의 공간 특성이 반영된 작업을 하며 설치미술에 더 흥미를 갖게 됐고, 설치미술가로의 전환은 자연스러웠다.

마땅히 도시는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곳이어야
황문정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유독 자주 발견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도시다.
“설치미술을 하다 보니 장소성에 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돼요. 처음에는 제가 머물렀던 공간, 우리 집 뒤뜰의 이야기를 했다면 차츰 그 공간이 도시까지 확장된 거죠. 도시도 하나의 장소니까요. 그렇게 도시를 들여다보니 사람들은 늘 ‘인간이 도시의 주인이다’, ‘도시는 인간이 주도하는 공간’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더라고요. 사실 인간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비인간이 함께 사는 곳이 도시인데 말이죠.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도시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주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황문정 작가는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을 ‘비(非)인간’이라고 표현한다. 동물, 식물, 곤충, 돌뿐만 아니라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 자동차, 전봇대, 가구, 아스팔트 등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이 비인간이다. ‘인간이 도시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주변의 것들을 돌아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꾸준히 드러내고 있다.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또한 같은 맥락이다.

황문정 작가만의 화법으로 표현한 대표작 ‘비인간 지구’(2021~2023)

황문정 작가만의 화법으로 표현한 대표작 ‘비인간 지구’(2021~2023)

물이 도시를 관통한 후 출현한 비인간들의 스펙터클 <After Flow>
“지난해 비가 정말 많이 왔잖아요. 그때 폭우를 직접 경험하고 작품을 구상했어요. 기후변화로 많은 양의 비가 내린 것도 있지만,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 또한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비가 오면 땅으로 스며들어야 하는데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도시는 빗물 투수율이 약 50~10%밖에 안 된다고요. 하수 시설이 급격히 불어난 많은 양의 물을 감당못 하니 순식간에 차오르게 되었고, 흙·쓰레기·잡초 등 지하에 있던 것들이 다 올라와 뒤엉키니 마치 도시가 물에 찢긴 느낌이었어요. <After Flow> 전시는 다양한 물이 도시를 관통한 후 출현한 비인간들의 스펙터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하 세계에 은둔해 있던 콘크리트·쓰레기·나뭇가지 등의 비인간들이 홍수처럼 범람해 만들어진 다양한 양상을 표현한 작품이 ‘애프터 플로우’, ‘아쿠아 바운드’, ‘비인간 지구’, ‘리퀴드 보드’다. 황문정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 시야에서 은폐돼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던 비인간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말한다.
“이 작품들은 비인간들이 언제나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예요. 사물이 과도하게 생산돼 가치가 절하되고 쉽게 교체되는 이 시대, 우리 주변 사물의 가치를 재고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비인간 지구’는 황문정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화법으로 만들었다. 간단한 게임 형태의 ‘비인간 지구’는 비인간들을 품고 있는 플라스틱 볼을 아래로 떨어뜨려도 돌고 돌아 다시 나타나는 형태로 도식화했다. 비주얼 면에서 관람객이 참여하고 싶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는점,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 모두 황문정 작가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비인간 지구’를 최애 작품 중 하나이자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손꼽는 이유다.

도시 관찰자로 여행길에 오를 것
온드림 소사이어티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하며 쉬어 가는 사람들이 ‘애프터 플로우’, ‘아쿠아 바운드’를 관람했다. 이를 본 황문정 작가는 “이곳처럼 사람들의 생활 반경 안에서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일부러 전시장을 찾지 않아도 커피 한잔 마시면서 고개 돌리면 미술작품을 볼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온드림 소사이어티는 참 반가운 공간이에요. 이런 공간이 많이 생기면 ‘현대미술은 너무 어려워’와 같은 철벽을 치는 마음도 허물어지지 않을까요?”라며 설치미술 작가로서의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도시 관찰자 황문정 작가는 다른 도시로 여행을 계획 중이다. 한국과는 다른 풍경의 도시를 살피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 작품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도시환경과 다른 나라의 도시환경을 비교하는 작품도 만들 생각이다.
인간과 비인간이 모였다 해체되기를 반복하며 그 모습을 끊임없이 탈바꿈하는 도시. 그런 도시를 온몸으로 관찰하는 황문정 작가는 또 어느 새로운 곳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으로 말을 걸어올지 벌써 궁금하다.

황문정 작가의 <After Flow> 전시는 다양한 물이 도시를 관통한 후 출현한 비인간들의 스펙터클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