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人
지구를 사랑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퍼피유니버스 이경희 대표
글 편집실 · 사진 안호성
새 길을 덜컥 내놓고도 이경희 대표는 별로 허둥대지 않는다. 나무보다 숲을 보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가 설립한 퍼피유니버스는 반려인에겐 ‘교감’을, 비반려인에겐 ‘공감’을 끌어내는 반려 문화 콘텐츠 전문 회사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그의 앞길에 포개져 있다.
‘개척자’인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후 위기 시대, 반려동물과의 공존법에 대하여.
반려인, 기후 위기를 늦추는 데 동참하다
작명은 ‘마음’을 짓는 일이다. 대상을 향한 소망이나 애정을 짧고 굵게 새기는 것이 이름을 짓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산’과 ‘우주’는 이경희 대표가 키우는 반려견들의 이름이자 그가 지키고 싶은 존재들의 명칭이다. 생애 최초의 기억부터 늘 개와 함께였던 그는 그들과 깊이 교감하면서 자연의 일부인 ‘산’을, 지구를 품고 있는 ‘우주’를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며 산다. 사랑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그에게 반려견은 가족을 넘어 삶의 ‘스승’이다.
“집 뒷산을 반려견과 함께 매일 산책해요. 개들 덕분에 계절이 어떻게 옷을 갈아입는지 날마다 새롭게 바라보며 살아요. 자연을 저절로 사랑하게 되죠.”
개는 산책을 매일 함께 해줘야 한다.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이 토양오염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려인은 날씨에도 매우 민감하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사계절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기온이 높아지는 데다 갑작스레 폭우가 내리는 일도 잦아 준비 없이 나선 길을 난감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인들 가운데는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가 꽤 많다. 이경희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단지 반려견을 키울 뿐인데, 그의 행보는 지구의 미래를 이롭게 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강아지와 산책할 때 100% 생분해 배변 봉투를 가지고 다녀요. 반려견을 목욕시킬 땐 천연 재료로 만든 비건 비누를 쓰고, 강아지용 장난감도 플라스틱보다 실로 만든 걸 사용해요. 구멍 난 양말로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여름에 산책할 땐 모기나 진드기가 많은데, 그럴 때 사용하는 기피제도 천연허브로 만든 친환경 제품을 구매해 쓰고 있어요.”
반려견에게 곤충으로 만든 사료를 먹인다는 것도 남다른 점이다. 반려동물용 사료를 생산하는 데는 엄청난 규모의 토지가 사용되고, 관련 산업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양도 매우 많은 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곤충 사료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이때, 그는 누구보다 먼저 그 길에 동참해왔다. 시작은 반려견의 육류 알레르기 때문이었지만, 곤충 사료를 먹이는 일이 탄소배출 감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1년 넘게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습식보다 건식이 탄소를 덜 배출한다는 것을 안 뒤로 건식 사료를 먹이고, 육류 섭취가 필요할 땐 원재료를 거의 가공하지 않는 ‘화식’으로 대체한다.
그 밖의 생활에서도 친환경 실천을 이어가는 편이다.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외출하고, 친환경 세제를 구매해 사용한다. 양치는 재생 100% 대나무 칫솔로 한다. 자주 드는 가방도 에코백이니, 이 정도면 가히 ‘친환경 지구인’이다.

이경희 대표는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위해 퍼피유니버스를 설립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반려 문화 콘텐츠’의 길
“퍼피유니버스는 지난해 2월에 설립한 반려 문화 콘텐츠 전문 회사예요.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를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지요.”
‘반려인이 반려동물과 교감할 수 있고 비반려인이 그 반려 문화를 공감할 수 있는, 반려동물과의 관계 중심 콘텐츠’. 그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반려 문화 콘텐츠를 이렇게 정의한다. 반려동물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기업을 컨설팅해주고, 반려인이 반려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을 만나 하나의 ‘길’이 된 셈이다. 지난해 12월엔 반려동물지속가능협회도 설립했다. 반려동물 관련 산업(반려동물 간식, 반려동물 액세서리 등)에 종사하는 이들부터 반려동물 촬영 사진작가, 반려동물 이벤트 기획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간다.
“관련 콘텐츠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싶어 한양대 문화콘텐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요. 곧 논문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반려동물 플랫폼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요소들을 콘텐츠 관점에서 연구하려 해요. 반려동물 플랫폼을 기획하고 설계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여느 플랫폼과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고 싶어요.”
퍼피유니버스를 설립하기 전 그는 ‘광고쟁이’였다. 영국 런던 예술대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한 뒤 국내의 굵직한 광고대행사(나라기획, 금강기획, 이노션)에서 광고 기획자로, 프로모션 기획자로 20년간 근무했다. 교감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프로모션 경험이 반려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금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그 일의 목적부터 효과까지 두루 고민해가며 계획하고 구성하며 추진한다는 공통점 덕분이다. 분야는 달라도 방법은 같다. 나무보다 ‘숲’을 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회사에 오래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미래인재가 지녀야 할 최우선 덕목은 통찰력이라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하든 전체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 능력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더라고요. 많이 경험하고 많이 실패하면서 문제점을 스스로 터득할 때 생기는 능력 같아요. 책임감은 통찰력에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하는 덕목이고요. 기후 위기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통찰력 있게 문제를 파악하고 책임감 있게 개선해나가면 적절한 해결책이 나오리라 믿어요.”
새로 생긴 그의 꿈은 ‘반려문화콘텐츠학 박사’가 되는 것이다. 반려동물에 관한 모든 것을 산업적·문화적·사회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아직 이렇다 할 모델이 없다. 그래서 어렵지만 그래서 즐겁기도 하다. 통찰력과 책임감의 양 날개로 자신만의 길을 자유롭게 날아가려 한다.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를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를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현재에 만족하기, 행복을 발견하기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이 하나 더 있어요. 기후 위기로 해마다 각종 재난이 발생하지만, 산불이나 홍수 등이 났을 때 반려동물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시스템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예요.
2019년 고성 산불 때 미처 목줄을 풀어주지 못해 그 자리에서 죽거나, 스스로 목줄을 끊고 나왔지만 심한 화상을 입은 반려동물들이 보도됐잖아요. 이후 위기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고는 하는데, 반려인과 반려견이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장소는 아직 없어요. 552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 정부와 지자체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서주셨으면 해요.”
인생을 통틀어 그의 곁엔 언제나 반려견이 있었다. 그에게는 갓 돌이 지난 자신의 옆에 몸집이 큰 진돗개가 얌전히 서 있는 흑백사진 한 장이 있다. 그 개에 대한 기억은 머릿속에 없지만, 그때 나눈 교감은 그의 무의식에 잔잔히 남아 있다. 이별도 일찌감치 배웠다. 반려견이 한 마리씩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마다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에 마음이 무너지곤 했다. 특히 ‘별’이가 별이 되어 떠났을 땐 회사 업무를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펫로스 증후군이 심각했다. 그때 그가 선택한 치유 방법은 봉사였다. 토요일마다 이태원 거리에서 유기견 입양 캠페인 봉사에 3년 동안 참여하면서 또 다른 반려견 ‘산’이도 입양하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했다. 그가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사람을 위한 콘텐츠를 꾸준히 진행하려는 이유다.
“깊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계속 반려견과 함께하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감정들을 그들 덕분에 알았기 때문이에요. 먼저 조건 없는 사랑을 배웠어요. 가장 고마운 건 현재에 만족하는 법을 깨닫게 해줬다는 거예요. 개들은 철저히 오늘을 살아요. 열심히 먹고 뛰고 짖으면서,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에 충실하죠. 곰돌이 푸가 한 말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반려견과 살다 보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돼요. 소소한 행복이 매일 저를 기다려요.”
하찮은 일에도 ‘괜찮은 것’은 들어 있고, 별 볼 일 없는 날들에도 ‘별처럼 빛나는 순간’은 숨어 있다. 그 사실이 문득 큰 힘이 된다.

이경희
현대차그룹 광고대행사 이노션에서 약 20년간 프로모션 팀장 등을 지냈다. 반려문화 콘텐츠 전문 회사 ‘퍼피유니버스’의 대표로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행복한 공존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