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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에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이지원 작가

편집실・사진 조혜원

이지원 작가(작가명: 둘)는 신생 작가다.

올해 대학을 졸업해 전업 작가로 발돋움한
신진 작가이자 신생(新生)을 이야기하는 작가.

이미 존재하지만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언어,
가상공간에 밀려 언젠가 가치를 잃게 될 현실 공간은
이지원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형질로 다시 태어난다.

현실에서 태어났으나 추상적이고,
현재에서 태어났으나 미래를 닮은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가능성’이다.

이지원 작가(작가명: 둘)는
신생 작가다.

올해 대학을 졸업해
전업 작가로 발돋움한
신진 작가이자 신생(新生)을
이야기하는 작가.

이미 존재하지만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언어, 가상공간에 밀려
언젠가 가치를 잃게 될
현실 공간은 이지원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형질로
다시 태어난다.

현실에서 태어났으나 추상적이고,
현재에서 태어났으나
미래를 닮은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가능성’이다.


현실 공간은 어떻게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농어촌은 소멸하고 도시가 생성된다. 하나의 지역구 안에 서도 전통 산업 중심 지역은 쇠락하고,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은 번성한다. 여기서 시야를 더 넓게, 더 멀리 보면 어떨까? 현실 공간은 침묵하고, 가상공간은 시끌벅적하다.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뉴미 디어 아트 작가이면서도 이지원 작가는 기술의 발전 끝에 그려지는 디스토피아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느꼈다. 2024년 11월 2일부터 12월 12일까지 온드림 아티스트에서 선보인 <신생(공) v2>전은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현실 공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디스토피아 반대편의 유토피아로 가고자 하는 열망, 그것이 찾아낸 세계가 바로 신생공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친구들과 만날 때는 학교나 카페에서 보기로 약속을 잡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어린 학생들은 로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 등 게임 속 가상 세계에서 만나고, 또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더군요. 가상공간은 디지털의 가변성을 내세워 매번 새로운 콘텐츠와 경험을 제공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 공간은 결국 버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제조업이 기반인 문래동이나 을지로가 잠시 버려졌던 것처럼 말이에요. 이러한 흐름이 제게는 두렵게 느껴졌어요. 현실 공간은 가상공간으로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과 가치를 지닌 곳인데, 쓰임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가치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문래동과 을지로가 도시 재생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듯 현실 공간에도 다시 살아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신생공 프로젝트로 이어졌습니다.”

현실 공간을 보존하고 되살릴 방법을 이지원 작가는 ‘소리’에서 찾는다. 일상 공간이나 전 세계를 여행하며 만나는 인상 깊은 공간에서 입체 음향 마이크로 소리를 수집해 보존하는 것이다. 신생공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는 한국의 서울·부산, 독일 베를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140여 곳에서 청각 정보를 수집했다. 그중에는 온드림 소사이어티 앞 명동 거리도 있다.

청각 정보는 데이터로 저장되었다가 인공지능을 거쳐 새로운 형태의 시각 정보로 탄생한다. 작가가 직접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다양한 공간에서 수집한 소리와 영상을 함께 받아들여서 이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학습한 후 이미지를 새롭게 구현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지원 작가도 수집가에서 뉴미디어 아트 작가로 변신한다.

“온드림 소사이어티에 들어와 가장 먼저 만나는 대형 영상 작품 ‘신생공 v2.0.0’은 이곳 바로 앞에서 수집한 소리를 후가공해 만든 영상이에요. 누군가에게 ‘명동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라’고 주문한다면,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오가고,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공간을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곳에서 수집된 소리를 듣고 초록색 나무, 푸르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 같은 자연 이미지를 떠올리더군요. 마치 ‘거대한 도시도 하나의 자연’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버려지지 말아야 할 것이
버려지지 않는 미래

이지원 작가가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하나의 심상이 아닌 시선이다. 작품을 보고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길 바라는 것이다.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어떤 소리가 나는지 인지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느 방향에서 소리가 들려오는지, 소리를 통해 어떤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는지 집중하고 생각하며 상상하길 바란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보게 되고, 느끼게 된다. 보고 듣는 정보를 통해 새로운 공간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것이 일상으로 연결된다면 현실 공간의 생명선 또한 계속 이어질지 모른다.

“제가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지속가능한 미래’는 버려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 버려지지 않는 미래입니다. 저는 그중 하나로 현실 공간을 든 것이고요. 가상공간 때문에 현실 공간이 뒷전으로 밀려나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팬데믹 시기처럼 자연이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과 같은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따라서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보존법을 찾아야 합니다.”

2024 온드림 소사이어티 청년작가 공모 <ONSO ARTIST OPEN CALL>을 통해 이지원 작가는 자신이 생각한 현실의 보존법을 사람들과 나누는 법을 배웠다.

“제가 작업하는 이유는 단순히 창작욕을 불태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 들에게 전달되어 공감 혹은 비판받기 위해서예요. 그러기 위해 평소 온드림 소사이어티 같은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고요. 운 좋게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청년작가로 선정되 면서 그동안의 갈증을 충족할 수 있었습니다.”

개방된 공간에서 전시를 진행하면서 이지원 작가는 ‘작품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전시’가 아닌 ‘공간과 어우러지는 전시’를 다시 구상했다. 전시장처럼 소리가 쏟아져 나오면 사람들의 대화를 방해할 수 있겠다고 여겨 스피커 대신 헤드셋을 두었고, 관람객의 시선과 주변 풍경과의 조화를 고려해 작품을 배치했다. 덕분에 다소 낯선 방식의 말 걸기인데도 사람들은 그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기술의 끝에 있을 유토피아를
그리는 작가

인공지능이 다양한 창작 활동에 활용되면서 예술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지원 작가는 그것을 영민하게 활용할 줄 안다. 대신 생각하고, 대신 답을 찾게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조력자(助力者)로서 기술을 쓸 줄 안다. 기술의 발전을 무작정 환영하기보다 그에 따라 나타나는 변화를 심도 있게 관찰하고, 작가가 해야 할 역할을 찾는다.

“최근 한 비평가의 대화를 통해 제 작업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정의할 수 있었어요. ‘기술의 끝에 있을 유토피아 모습을 그리는 작업’이라고 말이에요. 저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그 끝에 그려지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유튜브 쇼츠를 보면서 이것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고, 내가 지금 보는 사람이 진짜 사람인지도 모르는 게 두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디스토피아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현실 공간이 버려지는 게 무서워 신생공 프로젝트를, 소통 방법을 고민하면서 신생어(語)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것이죠. 앞으로도 저는 제가 바라는 유토피아로 향하기 위해 기술의 활용 방안을 계속 고민하고, 이를 작품으로 풀어낼 것입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AR)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고요.”

때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외면받아 사라지는 것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을 품는 이지원 작가. 그가 있기에 신생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도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