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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예술의 힘

김대현(문학 평론가, <에이스퀘어> 편집위원장)

예술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으로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발전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세계적 기업과 리더를 비롯해 많은 이가 예술에 주목하는 이유다.

예술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으로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발전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세계적 기업과 리더를 비롯해
많은 이가 예술에
주목하는 이유다.


예술의 필요

가끔 누군가 예술의 필요성을 물을 때 답하기 좋은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과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는 트루먼 카포티의 아름다운 문장이다. 카포티의 언급대로 세상은 우리의 존재를 그리 쉽게 기억하지 않는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를 경쟁에서 뒤처지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슬픔과 고통은 언제나 다른 세상의 일이다.

하지만 예술은 다르다. 예술은 효율을 추구하는 것도, 속도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예술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단지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말처럼 예술은 “구체적인 시간 속에 살고, 구체적인 사건을 겪는 구체적인 사람을 연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인간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슬퍼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온 세상을 멈출 수 있는 비효율적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기술이나 형식을 요하는 특정 범주의 행위 양식에 한정되는 이름은 아니다. 예술은 기존의 지배적 관념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세계관을 통칭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규정하는 또 다른 세계의 주인이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세계는 예술을 경유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변모하는 것이다.

일상을 변화시키는 예술의 힘

여든이 넘은 나이에 시를 배우기 위해 경상북도 칠곡에서 문해학교를 다니던 할머니들의 사연도 이런 이야기다. 시를 배우기 전까지 할머니들의 삶은 반복되는 일상과 고된 노동으로 점철된 일상이었다. 하지만 시를 배운 후 할머니들의 삶은 달라졌다. 할머니들에게 시는 단순히 내면의 감정을 함축적 언어로 표현하는 전문 기술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마이 보니까/시가 참 만타/ 여기도 시 저기도 시/시가 천지삐까리다”(‘시’)라는 박금분 할머니의 시처럼 일상 풍경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무감동한 대상으로 보이던 세계의 모든 것이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 각자의 서사와 감정을 담은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이 다. “모르는 글도 배우고/노래도 배우고/ 버스 타고 연극 하로도 가고/ 정말로 제미있는 세월을 보내며/ 먼산에 꽃이 피듯/ 내 인생도 정말 기쁘다/살 힘이 난다”(‘제미있는 인생’)는 정순임 할머니의 시도 마찬가지다. 글과 노래를 배우고 연극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종류의 오락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해 일상을 전복함으로써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인 것이다. 이후에도 할머니들은 자신의 시를 랩으로 바꾸어 래퍼로 활동하는 것과 함께 영화에도 출연하며 기존의 세계를 자신이 중심이 된 공간으로 역전시켰다.

빈곤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위험한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킨 것도 같은 종류의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이자 음악가 이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수도인 카라카스의 빈민가에서 11명의 아이를 모아 음악을 가르쳤다. 그중에는 전과 5범인 아이도 있었다. 이것이 전 세계적 열풍을 불러온 음악을 통한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시작이었다. 엘 시스테마에서 음악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결코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빈곤과 폭력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실용적 기술을 배운 것이 아닌데도 그들이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을 통해 마음속 깊은 곳에 박혀 있던 좌절감과 패배감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사람을 기능의 유무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번역할 필요가 없다. 거기서는 영혼이 영혼에게 호소한다”는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헌사처럼 음악은 사람의 가장 깊숙한 지점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킨다. 아브레우가 다른 어디도 아닌 빈민가에서 음악교육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일상을 변화시키는 예술의 또 다른 힘은 자신이 있는 장소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데에도 있다.

버려진 조선소는 경제학적으로 수명을 다하고 단지 소멸만을 기다리는 공간이다. 하지만 예술의 시선은 다르다. 조선소의 물건들에는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기억이 깃들어있다. 따라서 그곳은 지역의 역사가 누적된 의미 있는 장소다. 이 경우 조선소는 생산과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정서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 거점으로 작동한다. 속초의 칠성조선소가 바로 그런 공간이다.

인구 감소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일본의 나오시마 지역을 예술 지역으로 변모시킨 ‘나오시마 프로젝트’도 위와 다르지 않다. 나오시마는 세토 내해에 위치한 섬으로 본래 광업이 활발한 곳이었으나, 광업이 쇠퇴한 후 중금속과 산업폐기물들이 쌓여 사람이 살 수 없는 절망의 섬이었다. 하지만 어느 출판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나오시마를 통해 인간이 바다를 수탈한 비참한 결과를 보았고, 이의 복원을 통해 바다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다시 알리고 싶었다. 이는 ‘세토우치 트리 엔날레(Setouchi Triennale)’로 이어졌고, 그 결과 어떠한 경제적 생산도 하지 못함으로써 절망의 섬이던 나오시마와 그 주변 섬들은 바다가 입은 상처와 폐허를 끌어안음으로써 전 세계인이 찾는 예술의 섬이 되었다.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으로서 예술의 힘

예술은 우리 시대를 규율하는 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효율적 작업이 아니다. 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 주의에 따르는 합목적 작업도 아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4년에 걸쳐 그림을 완성한 미켈란젤로의 이야기처럼 예술은 비합리적이며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예술은 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브라질의 시인 페헤이라 굴라르는 “예술은 우리 삶이 충분하지 않기에 존재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우리 삶을 규율하는 지배적 논리와 사유만으로는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문학과 정치경제학은 양립 불가능한 선택지다”라는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언급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합리적인 사회 운영을 위해 인간을 도표와 수치로 환원하는 정치경제학과 달리 예술은 인간 개개인이 지닌 고유의 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예술이 기존 논리로는 해명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시를 쓸 수 없다고 믿은 사람들이 시를 썼을 때 생길 수 있는 일, 음악과 거리가 먼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 어떠한 물리적 변화없이 시선과 인식의 변화만으로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을 보여줄 수 있는 예술의 힘이 바로 그렇다.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으로서
예술의 힘

예술은 우리 시대를 규율하는 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효율적 작업이 아니다. 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 주의에 따르는 합목적 작업도 아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4년에 걸쳐 그림을 완성한 미켈란젤로의 이야기처럼 예술은 비합리적이며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예술은 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브라질의 시인 페헤이라 굴라르는 “예술은 우리 삶이 충분하지 않기에 존재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우리 삶을 규율하는 지배적 논리와 사유만으로는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문학과 정치경제학은 양립 불가능한 선택지다”라는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언급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합리적인 사회 운영을 위해 인간을 도표와 수치로 환원하는 정치경제학과 달리 예술은 인간 개개인이 지닌 고유의 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예술이 기존 논리로는 해명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시를 쓸 수 없다고 믿은 사람들이 시를 썼을 때 생길 수 있는 일, 음악과 거리가 먼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 어떠한 물리적 변화없이 시선과 인식의 변화만으로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을 보여줄 수 있는 예술의 힘이 바로 그렇다.

버려진 조선소는 경제학적으로 수명을 다하고 단지 소멸만을 기다리는 공간이다.
하지만 예술의 시선은 다르다. 조선소의 물건들에는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기억이 깃들어있다.
따라서 그곳은 지역의 역사가 누적된 의미 있는 장소다.

 

버려진 조선소는
경제학적으로 수명을 다하고
단지 소멸만을 기다리는
공간이다.

하지만 예술의 시선은 다르다.
조선소의 물건들에는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기억이
깃들어있다.

따라서 그곳은 지역의 역사가
누적된 의미 있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