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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비인간이 공생하는 세계
미래 구름으로 피어나다

인간과 비인간이
공생하는 세계
미래 구름으로 피어나다

김다슬 작가

편집실・사진 안호성

누구나 자신만의 우주를 품고 산다.
그리고 그 우주를 매개체를 통해 드러내 보이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김다슬 작가는 상상하고 염원하는 ‘새로운 우리’의 세계를 미디어 아트로 구현해낸다.
인간과 비인간이 공생하는 테라폴리스로의 초대장을 김다슬 작가에게 받았다.

누구나 자신만의 우주를 품고 산다.
그리고 그 우주를 매개체를 통해
드러내 보이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김다슬 작가는 상상하고 염원하는
‘새로운 우리’의 세계를
미디어 아트로 구현해낸다.

인간과 비인간이 공생하는
테라폴리스로의 초대장을
김다슬 작가에게 받았다.


모든 존재가 공생하는 새로운 우주,
테라폴리스

예술가에게는 무엇이든 캔버스가 될 수 있다. 김다슬 작가는 일상에서 만난 비물질과의 대화를 디지털 매체를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해낸다. 단채널·다채널 영상,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설치미술, 페인팅, 퍼포먼스 등 무엇이든 그의 캔버스가 된다.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선보이는 전시 <미래 구름 (Future Clouds)>에서는 작가와 우주, 미래와의 대화를 제너러티브 아트 (generative art) 영상과 프린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무언가 만들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공상과학이었습니다. 전문 지식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물질과 비물질, 현실과 가상 세계, 지구와 우주,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탐닉해오던 것이 제 작품 활동과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쳤죠. 조소와 미디어 아트를 공부하며 물질과 비물질에 대해 경험한 것 또한 한계를 두지 않고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이자 원동력이었습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미래 구름의 모습은 미국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Donna J.Haraway)의 테라폴리스(Terrapolis) 개념에서 잉태됐다. 테라폴리스란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 ‘테라(terra)’와 정치 체계가 성립된 도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폴리스(polis)’의 합성어로, 인간만이 아닌 지구의 모든 존재가 동등한 권리로 참여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구름으로 피어난 작가적 이상향

김다슬 작가는 공동체 범위를 우주까지 크게 넓혔다. 은하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의 공생, 이는 다른 행성을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만드는 공상과학적 개념 테라포밍(Terraforming)과도 이어진다.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을 넓히는 정복자적 시선이 아니다. 경계를 넘어 새로운 환경 속 미지의 존재들과도 공생할 수 있다는 열린 시선이다. 김다슬 작가는 이러한 생각과 시선을 행성의 자기장 및 대기의 흐름으로 구현해 테라폴리스의 하늘, 즉 미래 구름을 완성해냈다.

김다슬 작가가 구현한 세계는 도나 해러웨이가 주장한 솔루세(Chthulucene)와도 맞닿는다. 도나 해러웨이는 이분법적 질서와 종의 경계를 허물 것을 제안한다. 모든 존재가 함께 살아가며 번성하는, 경험하지 못한 미래 세계는 자칫 지금의 사람들에게 불안과 낯섦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김다슬 작가는 그것을 미래 구름이라는 가능성으로 지운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희망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구름이 흘러간다, 아주 빠른 움직임으로(2024)

“작품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상상하며, 흔히 간과하는 비인간 존재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테라포밍 개념을 연관 짓게 되었고, 미래 구름을 만들어 새로운 하늘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죠. 작품을 위해 태양계 행성과 각 행성의 자기장에 관해 공부하고, 자기장의 패턴을 구름으로 형상화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입력 데이터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구름은 이상향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어요. 구름이 움직인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내포하고요. 모든 존재가 중요시되고 공생하는 미래가 오길,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처럼 그때가 곧 다가오길 염원하는 마음이 작품에 담겨 있습니다.”

또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의 공생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을 지향한다. 기존의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모든 존재를 같은 크기와 무게로 여기는 것, 생태계 일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는 모든 존재가 잊히거나 배척되지 않는 것. 이것이 김다슬 작가가 정의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이자 이상향이다.

그의 작품은 계속된다,
마치 구름처럼

김다슬 작가는 2024 온드림 소사이어티 청년 작가 공모를 통한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의 협업을 “친절한 작가가 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대중에게 더욱더 친숙하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하며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에는 전시 전반에 대한 설명과 관련 개념, 작품 제작 방식, 관련 서적 등이 정리되어 있다. 관람객은 이를 통해 작품과 작가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관련 개념과 작품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낼 수 있다. 나아가 상상 속에서 자신만의 테라폴리 스를 구현해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저는 친절한 작가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만들어놓은 세계 안에서 관람객이 나름의 답을 찾길 바랐죠.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모든 해석을 맡겨두는 것만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의도와 개념을 안다고 해도 자기 나름의 답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바라건대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좀 더 나은 미래를 마주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다슬 작가는 다음 작업을 위해 새로운 공생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일상의 모든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것이 아침 산책 중 마주한 작은 새의 지저귐이 될 수도,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의 대사가 될 수도 있다. 2024 온드림 소사이어티 청년 작가 공모에 선정된 작가들과의 만남 또한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지원을 받거나 공모에 선정된 바 있는 청년 작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좋을 것 같아요.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꾼다는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각자의 언어로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작가들과 함께한다면 더 큰 시너지가 날 것 같거든요. 저 또한 그랬고요. 덕분에 이번 공모를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도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가고, 꾸준히 많은 것을 배우고 노력할 겁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도 계속해서 예술 분야와 젊은 작가들에게 큰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늘은 우리에게 눈앞에 보이는 현실 공간이자 그 너머를 상상하게 하는 미지의 공간이다. 김다슬 작가가 그려낸 하늘, 미래 구름 또한 눈앞에 있지만 그 너머를 상상하게 한다. 인간과 비인간 및 물질과 비물질이 같은 무게, 같은 크기로 존재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 그 공간의 하늘은 어쩌면 김다슬 작가가 만들어낸 미래 구름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