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실험실에서 사회 변화의 촉매로
독일 미디어 그룹이 만든
싱크탱크형 재단
베르텔스만 재단
Bertelsmann Stiftung
글한곤(자유기고가)
사진베르텔스만 재단 홈페이지
독일 귀터슬로, 베르텔스만 그룹
본사 맞은편에 서 있는 건물 하나가 눈길을 끈다.
1977년 문을 연 베르텔스만 재단 본부다.
독일 최대 미디어·출판 기업이 세운 이곳은 그저 돈 쓰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직원 330여 명이 35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한 해 7,700만 유로를 쏟아부으며 교육에서 민주주의, 보건, 경제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 실험을 시도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싱크 앤 두 탱크’라 부른다.
독일 귀터슬로, 베르텔스만 그룹
본사 맞은편에 서 있는
건물 하나가 눈길을 끈다.
1977년 문을 연
베르텔스만 재단 본부다.
독일 최대 미디어·출판 기업이
세운 이곳은 그저 돈 쓰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직원 330여 명이 35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한 해 7,700만 유로를 쏟아부으며
교육에서 민주주의, 보건, 경제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 실험을 시도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싱크 앤 두 탱크’라 부른다.
기업가 한 사람의 신념에서 시작된 실험
이야기는 라인하르트 몬(Reinhard Mohn, 1921~2009)이란 기업가에게서 출발한다. 1835년 조그맣게 시작한 인쇄·출판사를 글로벌 미디어 제국으로 키운 인물이다. 그는 사업으로 번 돈을 사회에 진 빚이라고 생각했다.
몬은 베르텔스만을 경영하면서 권한을 나눴다. 직원들을 성과의 주인으로 만들고, 각자에게 책임을 맡겼다. 이런 원칙이 회사뿐 아니라 사회 전체로 퍼져야 한다고 믿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스스로 움직여야 돌아간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것이 베르텔스만 재단을 세운 철학적 뼈대가 됐다.
1977년 2월 8일, 몬은 10만 마르크로 비영리 재단을 설립했다. 목표는 두 가지였다. 우선 베르텔스만과 몬 가문의 사회 활동을 제도로 만들어 계속 이어가는 것, 다음으로 재단을 회사의 대주주로 만들어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 1993년 몬은 베르텔스만 그룹 지분 대부분을 재단에 넘겼다. 지금 재단은 관련 재단들과 함께 그룹 자본의 80.9%를 소유하고 있다. 단, 지분과 의결권을 칼같이 갈라놔서 재단이 회사를, 회사가 재단을 좌지우지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이런 구조 덕에 베르텔스만 그룹이 벌어들인 배당금이 재단의 예산으로 흘러 들어간다. 2023 회계연도 기준으로 보면 재단은 1억6,300만 유로를 받았고, 그중 7,560만 유로를 집행했다. 쓴 돈의 절반 가까이인 3,870만 유로는 프로그램과 프로젝트 개발 및 운영 등에 들어갔고, 1,760만 유로는 관련 비영리단체들을 도왔다. 재단이 설립된 뒤 지금까지 공익사업에 쏟아부은 돈을 합치면 19억 유로에 이른다.
보조금 대신 발로 뛴다
베르텔스만 재단의 가장 큰 특징은 ‘운영 재단(oprating foundation)’ 방식이다. 흔히 재단은 지원금만 건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베르텔스만은 다르다. 프로젝트를 직접 짜고 현장에서 운용한다. 1979년 초대 상임이사로 합류한 한스-디터 베거가 이 모델을 설계했고, 몬이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런 방식을 구현하려면 인력이 필요하다. 직원 330명이 주제와 분야별로 나뉘어 35개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각 프로젝트는 기한이 정해져 있어 끝나면 다음 과제로 넘어간다. 프로젝트 팀은 여러 분야 전문가들, 정책 담당자들, 연구소, 시민단체들과 긴밀하게 엮여 일한다.
국경 넘어 뻗어나간 영향력
베르텔스만 재단은 독일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980년대부터 국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1991년 헬무트 콜 총리의 외교정책 고문이던 호르스트 텔치크가 상임이사로 오면서 본격적으로 국제화에 나섰다.
1995년 몬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푼다시온 베르텔스만을 세웠다. 이 독립 자회사는 스페인 청년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고, 직업훈련 시스템 개발을 돕고 있다. 2008년에는 워싱턴에 베르텔스만 재단 북미 지부를 열어 대서양 양쪽의 협력 문제를 다룬다.
2000년에는 브뤼셀에 사무소를 냈고, 2018년에는 베를린 역사지구에 새 건물을 세워 독일 수도권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본거지는 귀터슬로지만 베를린, 브뤼셀, 워싱턴, 바르셀로나에 거점을 두고 유럽과 대서양 양안의 정책 논의에 발을 담그는 진짜 국제 싱크탱크로 발전했다.
폭넓은 분야로 확장… 글로벌 이슈도 관여
베르텔스만 재단이 다루는 분야는 넓다. 교육, 민주주의, 사회, 보건, 경제, 문화까지 손대지 않는 곳이 없다. 교육에서는 유아교육 투자 현황을 주기적으로 들여다보고,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어떤 기술이 필요할지 예측하는 방법론을 개발한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게 BTI 전환 지수 프로젝트다. 전 세계 300명 가까운 전문가와 손잡고 만든 이 지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을 나라별로 비교하고, 평화로운 변화 전략을 찾아낸다. 베르텔스만 재단이 독일 안 문제뿐 아니라, 글로벌 차원 이슈에도 깊숙이 관여한다는 증거다.
재단은 라인하르트 몬상(옛 이름 카를 베르텔스만상)도 시상한다. 사회 정치 문제를 푸는 선구적 방법을 개발한 국제적 인물을 뽑아 상을 수여한다. 1988년 첫 시상 이후 이 상은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한 혁신적 시도를 조명하는 역할을 해왔다.
베르텔스만 재단의 49년 역사는 민간 싱크탱크가 공공 정책을 움직이는 방식의 한 모델을 제시한다. 기업이 성공해서 번 돈이 사회적 책임으로 흘러가고, 그 책임이 체계적 정책 연구와 실험으로 구체화되며, 그 결과가 다시 사회 변화로 돌아오는 순환이다. 세계화·디지털화·인구 변화라는 큰 흐름이 사회를 뒤흔드는 지금, 베르텔스만 재단은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미래를 만들도록 돕겠다는 설립 목표를 여전히 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