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탄생한
딥테크 기업, 저크
저크는 2022년 11월 22일, 고려대학교 신소재공학부 이헌 교수가 교원 창업 형태로 설립한 딥테크 스타트업이다. ‘ZERC’는 Zero Energy Radiative Cooling의 약자다.
“창업을 결심한 것은 이공계 연구자가 연구를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비전을 다음 세대에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에너지 없이 냉각한다는 기술적 철학을 사명으로 삼아 연구 결과를 사회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저크를 창업하게 됐습니다.”
창업 초기 인원은 단 4명. 하지만 저크가 쌓은 행보는 놀라울 따름이다. 2023년 미국 CES 혁신상을 시작으로 환경부 글로벌탑 친환경 기술 대상 우수상(2024), 말레이시아 국제 발명전 금상·특별상(2025)을 연이어 수상했다. 기술적 ‘가능성’이 아니라 ‘실체’를 증명한 셈이다. 이와 동시에 창업성장기술개발(TIPS), 서울형 민간투자 연계 기술 사업화 프로그램, 민관 공동 창업자 발굴 육성 사업(2024),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2025) 등 주요 정부 사업에 선정되며 안정적 R&D 기반도 확보했다. 기술, 시장성, 글로벌 확장성 이 세 가지 축을 모두 충족하는 드문 스타트업으로 평가받는다. 저크는 ‘작지만 단단한 회사’를 넘어 ‘기술의 미래를 여는 기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복사냉각 페인트를 도포해 건물 외부 온도를 45℃에서 36.6℃로 낮춘 모습
페인트 한 번으로 냉각을 이루는 기술,
복사냉각의 가치
복사냉각(radiative cooling)은 지표면의 열이 적외선 형태로 우주로 빠져나가면서 온도가 떨어지는 자연현상으로, 원래는 밤에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2014년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낮에도 주변 온도보다 낮은 주간 복사냉각을 실험적으로 구현하며 전 세계 연구자들의 경쟁이 시작됐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가 태양광을 거의 흡수하지 않는 높은 반사율이며, 두 번째가 적외선 대역의 열을 적극적으로 방출하는 방사율이다.
이헌 대표가 개발한 복사냉각 페인트는 이 원리를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구현한다. 필름 제작, 구조체 구축 등 복잡한 과정이 아닌, 페인트처럼 바르기만 하면 냉각이 작동한다는 점이 혁신이다.
“복사냉각 페인트를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구현했습니다. 어떤 표면에도 칠하기만 하면 냉각이 되므로 누구나 손쉽게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혁신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편의성이 있다는 것은 곧 사회적 효용을 크게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건물이나 창고, 냉동 시설에 복사냉각 페인트를 바르기만 하면 냉방 전력을 30% 이상 절감할 수 있습니다. 폭염을 견디며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모 코팅이나 냉방 취약계층의 주거 개선 등 다양한 분야에 즉각적으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데 이 기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폭염 속 노동자의 안전모에 복사냉각 코팅을 적용하는 실험을 진행할 때는 기술이 생명을 보호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 퍼듀대 루안 교수팀이 2022년에 발표한 연구보다 저크의 특허가 1년 앞서 등록되었다는 사실이다. 연구 수준으로도 세계 최전선에 서 있다는 의미다.
저크가 넓히는 기술의 지평,
글로벌 실증으로 기술력 증명
저크가 가장 먼저 상용화에 성공한 제품은 복사냉각 페인트(코팅액)다. 현재 양산 시제품까지 완성되었고, “바르는 순간, 냉각이 시작된다”라는 실제 사용자 피드백은 제품의 시장 경쟁력을 강화했다. 저크가 개발 중인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복사냉각 섬유다. 기술적 성능은 이미 입증됐지만, 아직 제조 단가가 높아 상용화까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그러나 운동복, 근로복, 외부 활동용 의류 시장에서는 폭발적 확장 가능성이 예측된다. 특히 해마다 폭염이 길어짐에 따라 냉감 의류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어 적용 가치가 매우 높다. 저크는 플라스틱 자체에 복사냉각을 구현하는 연구도 시도했으나, 성형성이 문제였다. 이헌 대표는 “기존 플라스틱 제품 위에 페인트를 칠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다”라는 결론을 내고, 플라스틱 분야는 페인트 기반 솔루션으로 전략 변경을 마쳤다. 이는 기술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시장 적용성을 우선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저크는 글로벌 경쟁력을 타진하기 위해 2023년 카타르대와 함께 혹서 지역 실증도 진행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도 1년간 복사냉각 페인트 실증을 수행해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 그 후 사우디 기업으로부터 기술이전 제안까지 받았지만, 이헌 대표는 단호히 거절했다.
“한국 시장에서 먼저 기술력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술의 가치를 너무 낮은 금액으로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기술보다 가치에 무게를 두는 이헌 대표의 결정이었다. 진짜 기술 기업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작은 기업이 만드는 큰 변화,
저크의 미래
이헌 대표가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에 지원한 이유는 명확했다. 라디쿨이라는 기업이 닛산 전기차 100대에 복사냉각 페인트를 적용해 성능을 입증한 사례를 보면서 저크가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헌 대표는 저크의 기술을 현대자동차에 적용하겠다는 일념으로 액셀러레이팅 트랙에 지원했고, 결국 H-온드림 펠로 13기로 선발됐다.
현재 저크는 현대자동차와 상용차 천장부 POC를 진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HD현대일렉트릭과 변압기 복사냉각 POC를 진행하고 있다. 이헌 대표는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 활동은 도전의 기회임과 동시에 나이와 배경을 넘어 미래를 개척하는 젊은 대표들에게 에너지를 얻는 기회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혁신은 스타트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기업이 큰 변화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저크는 지금 작은 회사이지만, 우리 미래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저크는 복사냉각 기술로 지구온난화를 완화하는 데 시원하게 기여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겁니다.”
기술은 이미 준비되었고, 실증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가능성은 시장에서 검증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작은 팀이 만든 기술이 지구의 온도를 실제로 낮추는 순간이다. 저크는 그 길의 시작점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시원한 세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