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나만의 생각 근육을
키우는 법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김재인 학술연구교수


편집실

사진안호성
동그라미

AI가 빠르게 앞서가는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을까?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김재인 교수는 기술의 발전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속도에 기대어 사고를 멈추는 순간을 경계한다.

그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변화를 ‘능력의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짚는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그는 다시 묻는다.

AI가 빠르게 앞서가는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을까?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김재인 교수
는 기술의 발전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속도에 기대어

사고를 멈추는 순간을 경계한다.

 

그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변화를

‘능력의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짚는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조건
을 그는 다시 묻는다.

인간을 연구하고 AI를 연구한다

김재인 교수는 AI 시대 인간 고유의 가치를 탐구해온 철학자다. 들뢰즈 철학과 과학철학을 기반으로 기술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인간의 사고와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탐색해왔다. 10년 전인 2016년 3월 알파고가 등장하기 전부터 AI와 인간의 관계를 연구했고, 서울대학교에서 ‘컴퓨터와 마음’을 주제로 강의한 바 있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명확하다.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다.

“AI를 활용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각하는 일’까지 함께 맡기는 경우가 생깁니다. 결과는 빠르게 얻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사고의 과정을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가 가진 능력은 조금씩 멈추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전에는 할 줄 알던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는 디스킬링(deskilling), 즉 탈숙련이 일어나게 됩니다. 기술 의존이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구조적 상실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훈련을 통해 획득하던 사고 능력이 이제는 생략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경험을 통해 축적해야 할 인지적 과정이 단축되거나, 사라질 위험이 크다고 본다. 김재인 교수가 반복해서 “인간을 다시 묻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의 변화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풍요가 만들어낸 또 다른 결핍

김재인 교수는 AI가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폭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더 많은 것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 자체는 분명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구조가 초래할 불균형에 주목한다. 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그것을 소비하고 의미화하는 인간의 능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많은 것이 생산되지만 내가 다 소비할 수는 없습니다. 풍요 속에서 오히려 빈곤감을 느끼는 상황이 생길 수 있지요.”

그는 이를 뷔페에 비유했다. 선택지는 넘쳐나지만, 실제로 경험하고 소화할 수 있는 양은 제한적이다. 그 결과 풍요 속에서 오히려 결핍을 느끼는 역설적 상태가 만들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 불균형이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구조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생산이 과잉된 상황에서 소비가 받쳐주지 못하면 결국 경제적 가치 역시 왜곡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김재인 교수는 지금의 상황을 “생산과 소비 사이의 불균형이 누적되는 초기 단계”라고 표현했다. 아직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간극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생각의 근육은 훈련으로 만들어진다

AI 시대가 가속될수록 인간이 지켜내야 하는 능력에 대한 고민은 커진다. 김재인 교수는 인간의 ‘본원적 역량’이 더 중요해진다고 답했다. 그는 이를 ‘생각의 근육’ 혹은 ‘근력’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을 활용하는 주체의 능력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I의 도움 없이도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그 밑천이 중요합니다. 언어능력이 사고의 핵심입니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고를 형성하는 구조입니다. 그중에서도 쓰기는 가장 강도 높은 훈련이지요.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논리가 생기고, 판단의 기준이 만들어집니다. 반대로 이 과정을 생략하면 결과는 얻을 수 있어도 능력은 축적되지 않는 거죠.”

김재인 교수는 AI를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속도를 높이는 도구로는 유효하지만, 사고 과정을 대신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글을 쓸 때 AI를 최소한으로 활용하되, 핵심 판단과 구조화는 스스로 수행한다. 이 구분이 무너지는 순간, 인간은 점점 사고의 주체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 사용 능력이 아니라, 기술 없이도 작동하는 사고의 힘에서 결정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천천히 해야 할 것을 지키는 일

속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대에서 김재인 교수는 오히려 ‘천천히 해야 할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효율로 판단하다 보면 시간이 필요한 경험들이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줄거리 요약이나 짧은 영상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이 있습니다. 긴 글을 읽고, 서사를 따라가며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의 깊이가 형성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확장시킬 수 있어요.”

이 지점에서 김재인 교수는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같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의 역할을 제안했다.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학습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 사업을 운영한 저력을 바탕으로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여럿이 모여서 같은 텍스트를 읽고, 질문을 나누고,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는 경험을 쌓게 하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독서 활동이 아니라 언어력, 사고력, 소통력을 동시에 훈련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AI 시대에 인간의 역량을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김재인 교수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그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성장할지는 여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젊은 세대에게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스스로 생각해내는 과정을 포기하지 말라고. 그 과정이 불편하고 느리더라도, 결국 그것만이 자신을 남기는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