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에서 만난

정몽구 글로벌 스칼러십 인의

AI 시대의
예방적 복지

조벽(고려대학교 석좌교수)

조벽(고려대학교 석좌교수)

동그라미

오래전 어느 아동복지 재단에서 6년간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재단의 사명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생존이 급급한 취약계층에 식량을 전달하고,

교육과 자립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오래전 어느 아동복지 재단에서 6년간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재단의 사명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생존이 급급한 취약계층에 식량을 전달하고, 교육과 자립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꾸준히 발전해온 기업 재단
AI 시대 맞춤형 미션과 전략 필요

생존과 성공에 대한 ‘정답’이 존재하던 시절, 재단은 공공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 그 정답을 배달하는 따뜻한 구원자였다. 즉각적인 결과가 눈에 보였기에 재단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보람도 컸다.

그 후 여러 대기업의 재단 사업에 참여하며 사회공헌의 진화를 목격했다. 단순히 수혜 규모를 키우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사업의 주도권을 현장으로 옮기고 있다. 무엇이 필요한지 재단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대신, 현장의 수혜 그룹이 직접 해결책을 담은 프러포절을 제출하고, 재단은 그들의 파트너가 되는 방식이다. 이는 수혜자를 수동적 객체에서 능동적 주체로 격상시킨 중요한 혁신이다.

나아가 시스템의 근본 변화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나 기업이 리스크 때문에 망설이는 난제에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다. 록펠러 재단이나 게이츠 재단처럼 단순히 백신을 공급하는 차원을 넘어 보건 시스템의 공급망을 재설계하고,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한다. 당장 가시적 성과가 없더라도, 누군가 인류의 난제를 풀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회는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이제 또 한 번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우리는 AI 시대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를 넘어 사회의 계층구조와 인간의 가치 자체를 흔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취약계층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디지털 기기에 소외된 고령층, AI가 주는 정답에 길들여져 비판적 사고력을 잃어가는 젊은 세대, 그리고 급변하는 기술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불안과 절망에 직면한 전문직 등이 바로 AI 시대의 새로운 소외계층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앞에 기업 재단은 미션과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기업 재단의 사명은 더 이상 과거처럼 간단하거나 명확하지 않다. 단순히 안전망을 깔고 사다리를 놓아주는 식의 복지사업은 한계에 부딪혔다. 어디가 나락이고 어디가 정점인지 그 경계조차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4 스칼러십 여름캠프 힐링워크숍 참여 모습
2024 스칼러십 여름캠프에서 CMK 프렌즈와 함께

정부·기업·시민사회를 하나의 테이블로
사회적 담론 주도할 ‘어젠다 세터’ 플랫폼 되길

우선 현대판 문맹 퇴치 운동이 시급하다. 기술 격차가 생존 격차로 직결되는 시대를 막기 위해 소외계층이 AI를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구글 재단의 엔지니어들이 단체에 파견되어 기술을 직접 개발해주는 ‘임팩트 챌린지’ 사업은 좋은 본보기다. 단순히 도구 활용법을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인간 고유의 역량인 통찰력으로 정답 대신 ‘해답’을 얻는 교육 혁신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경제적 안전망을 넘어선 ‘윤리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절실하다. 기업 재단은 알고리즘이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지 않도록 공정성을 감시하고, 기술로 인한 정서적 고립을 해결하는 기술·인문학적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록펠러 재단이 알고리즘 공정성 검증 모델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기업 재단은 정부, 기업, 시민사회를 하나의 테이블로 불러 모으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는 ‘어젠다 세터’가 되는 게 필요한 것이다.

AI 시대의 변화는 빠르고 후유증은 거세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변화에 뒤처진 이들을 사후에 수습하는 수동적 복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지의 기본 전략을 보호에서 예방으로 바꿔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데 세계적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기업 산하의 복지 재단은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할 취약계층을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시스템의 오류를 바로잡는 단계를 넘어 그 오류를 사전에 ‘예방’하는 사업만이 AI 시대에 진정한 복지일 것이다.

조벽 석좌교수

미국 미시간 공과대학교(Michigan Technological University)에서 20년간 재직하며 최우수 교수상과 미시간주 최우수 교수상을 수상한 세계적 공학 교육자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마이클 샌들 등과 함께 세계 최고 교수 11인으로 소개되었고, 180여 개 대학에서 교수 대상 특강을 진행해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일컫는다. 현재 고려대학교 석좌교수이자 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