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지키는 일은 오래된 모습을 보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기술을 이어갈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고, 오늘의 사람들이 기꺼이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와이비에스에듀 사회적협동조합 서진성 이사장은 문화 브랜드 케이티풀을 통해
무형유산 전승자의 작품을 체험과 교육, 상품으로 연결하고 있다.
국가유산체험센터에서 서진성 이사장을 만나 전통이 오늘의 문화로 살아가는 방법을 물었다.
전통을 지키는 일은 오래된 모습을
보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기술을 이어갈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고, 오늘의 사람들이
기꺼이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와이비에스에듀 사회적협동조합
서진성 이사장은 문화 브랜드
케이티풀을 통해 무형유산 전승자의
작품을 체험과 교육, 상품으로
연결하고 있다.
국가유산체험센터에서
서진성 이사장을 만나
전통이 오늘의 문화로 살아가는
방법을 물었다.
성악가가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서진성 이사장은 중앙대학교와 로마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10년의 세월은 그에게 예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기준을 남겼다. 성악 역시 스승이 제자에게 일대일로 전수하는 도제식 교육을 통해 이어진다는 점에서 무형유산과 닮아 있었다. 다만 한국에 돌아와 마주한 전통 예술의 현실은 그가 경험한 이탈리아의 환경과 달랐다.
“이탈리아에는 성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설 수 있는 무대와 활동할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무형유산을 전승하는 분들은 투 잡, 스리 잡을 해야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전통문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인의 어려움을 전해 들으면서였다. 고등학교 후배의 아내가 전통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생계와 전승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현장에서 만난 전승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보유자에게 기술을 배워 다음 세대로 이어가야 할 이수자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기 어렵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고 안타까웠다. 그는 국가가 무형유산의 원형을 보존하고 보유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아래에서 기술을 이어가는 이수자들의 활동 기반까지 충분히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민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진성 이사장이 찾은 답은 전승자의 기술이 새로운 수요를 만나도록 돕는 일이었다. 작품을 만들고 공연하는 사람에게 모든 기획과 판매까지 맡기기보다 그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와이비에스에듀 사회적협동조합의 문화 브랜드 ‘케이티풀(katiful)’이 전통과 대중을 연결하는 일을 넓혀왔다. 케이티풀이라는 이름에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뜻을 담았다. 서진성 이사장은 전통을 특별한 날에만 만나는 문화가 아니라, 일상에서 보고 만들고 즐길 수 있는 경험으로 바꾸는 데 주목하고 있다.
장인의 기술에 새로운 쓰임을 더하다
케이티풀이 추진하는 대표 사업은 무형유산 체험 키트 제작이다. 전승자의 작품과 기술을 바탕으로 누구나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이를 교육과 판매로 연결한다. 지난해 6종의 키트를 개발한 뒤 올해부터 본격적인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인터뷰 당시 서진성 이사장이 밝힌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1,300개 이상이다.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기 전인 지난해에 약 200개를 판매한 것과 비교하면 체험 콘텐츠에 대한 수요를 확인할 수 있는 변화다.
상품을 만드는 과정이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전승자는 정체성과 전통적 제작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획자는 소비자가 갖고 싶어 할 만한 디자인과 적정한 가격을 고민한다. 서진성 이사장은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포기하기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접점을 찾으려 한다.
“전승자 선생님들은 간단한 체험 키트에도 의미를 담고 싶어 하세요. 저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갖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데 더 비중을 두고요. 처음에는 조율하기 쉽지 않았지만, 선생님들이 저희 의견을 많이 받아주셔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기술을 알리고 유통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에 걸맞게 기획하는 일은 저희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성수에서 시작된 새로운 연결,
세계로 이어지는 체험
국가유산체험센터는 올해 3월 잠실 롯데월드에서 성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전 공간에서는 놀이공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우연히 체험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성수에서는 한국 문화를 경험하려는 외국인과 새로운 콘텐츠를 찾는 방문객을 만날 가능성이 커졌다. 서진성 이사장은 외국인 방문객이 많은 지역이라는 점을 이전의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진, 살아 있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라,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보편적인 가치이기도 하고요. 성수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저희가 하고자 하는 일을 펼쳐보고 싶었습니다.”
성수의 근현대적 풍경과 전통문화가 만나는 분위기도 그에게는 흥미로운 가능성이었다. 센터는 전통을 엄숙하게 감상하는 공간에 머물기보다 직접 만들고 배우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과 업무 협약을 맺었으며, 인근 한양대학교와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올해 2학기부터는 한양대학교와 함께 외국인 대학원생을 위한 전통문화 교양 수업과 체험 강사 양성 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서진성 이사장이 기대하는 변화는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 문화를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직업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케이티풀이 개발한 약 16종의 체험 키트를 활용해 강사를 양성하고, 이들이 한국이나 본국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구상이다.
“전승자 선생님들이 직접 모든 강의를 진행하지 않아도 외국인 유학생 강사들을 통해 곳곳에서 체험이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작품 활동에 더 전념할 수 있고,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일을 해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죠.”
이러한 가능성을 실감한 계기는 2년 전 베네치아 카니발이었다.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와 함께 공연에 참여했을 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며 다가온 외국인 여학생 20여 명을 만났다.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만 해도 한국에 대한 관심을 체감하기 어려웠던 그에게는 그야말로 놀라운 변화였다. 이후 베네치아의 코믹스 행사에서 한국관을 기획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한국 음식과 뷰티, 전통문화를 함께 소개한 공간에는 젊은 세대뿐 아니라 부모 세대도 찾아왔다. 자녀가 좋아하는 한국 문화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왔다는 이가 많았다. 그는 K팝과 드라마, 영화에서 시작된 관심이 한국의 다양한 문화로 확장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전통을 즐기는 무대에서
더 많은 사람이 만나는 공간으로
서진성 이사장은 전통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면 기획의 출발점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급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관점을 바꾸면 전통도 얼마든지 지금 세대가 기꺼이 선택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온소 스테이지에 참여한 경험 역시 그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다. 그동안 공예 등 무형유산의 기능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온소 스테이지에서는 노래와 춤, 악기 등 예능 분야의 가능성을 더욱 명확하게 확인했다. 그는 전통적인 공연부터 현대적으로 변주한 무대까지 다양하게 구성하고, 공연 전에는 공예 체험을 함께 진행했다.
“온소 스테이지를 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국악을 생각보다 많은 분이 좋아해주신다는 걸 느꼈거든요. 관객들이 함께 흥을 내고, 일어나서 호응하고,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이렇게 즐기는구나 싶었습니다.”
온소 스테이지 경험은 서진성 이사장이 추구해온 방향과도 맞닿아 있었다. 기업과 재단, 전통 예술인이 각자의 역할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협력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가능성을 봤다. 케이티풀의 다음 목표는 이러한 연결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서진성 이사장은 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 조직 확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현재의 사회적협동조합을 넘어 내년에는 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및 기업이 함께할 수 있는 협업 모델을 늘리고 싶다는 구상이다.
“더 많은 전통을 이어가려는 분들과 그것을 경험하려는 분들이 만나는 장도 열고 싶습니다. 공연도 보고 체험도 하고, 작품과 다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면 사람들이 훨씬 쉽게 전통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그리는 가장 큰 꿈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결국 그것을 이어갈 사람과 즐길 사람을 함께 만드는 일이다. 서진성 이사장은 장인의 기술에 새로운 쓰임을 더하고, 그 기술이 다시 누군가의 일과 경험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고 있다. 오래된 것을 오늘의 문화로 바꾸는 그의 실험은 성수의 작은 체험 공간에서 시작해 더 많은 사람과 무대로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