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보건은 단순히 의료를 지원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남기고,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 작동하는 변화를 만들 것인가에 가까운 질문이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김윤섭 특임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재난과 빈곤 현장을 오가며 그 질문에 답해왔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함께 한 마다가스카르 온드림 해외 실명 예방 사업부터
올해 시작하는 탄자니아 모자보건 사업까지 그가 꾸준히 지켜온 방향은 명확하다.
의료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안에서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국제 보건은 단순히
의료를 지원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남기고,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 작동하는
변화를 만들 것인가에 가까운 질문이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김윤섭 특임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재난과 빈곤 현장을
오가며 그 질문에 답해왔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함께 한
마다가스카르 온드림
해외 실명 예방 사업부터
올해 시작하는 탄자니아
모자보건 사업까지
그가 꾸준히 지켜온 방향은 명확하다.
의료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안에서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국제 보건 현장에서 축적한 시간, 김윤섭의 방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국제 보건 전문가인 김윤섭 특임교수는 보건학 석사와 국제 보건 박사과정을 거쳐 20년 넘게 현장을 기반으로 사업을 수행해왔다. WHO·KOICA·UNICEF 등과 협력해 성과 관리와 사업 설계를 총괄했고, 미얀마·캄보디아·팔레스타인·동티모르 등 다양한 국가에서 보건의료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장을 오가며 그는 의료 지원사업이 왜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의료 장비와 시설이 들어와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운영이 멈추고, 지원이 끝나면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현장도 반복해서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김윤섭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얼마나 많은 지원을 했는가보다 무엇이 현장에 남는가였다. 그래서 그는 국제 보건 사업에서도 단순한 의료 지원보다 성과 관리와 구조설계에 집중해왔다. 치료를 제공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운영 체계까지 함께 남기는 방식이다.
“의료는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시스템입니다. 장비와 건물은 남길 수 있어도 그걸 운영할 사람이 없으면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김윤섭 교수는 국제 보건을,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돕는 사업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현장을 이해하고, 그 사회 안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 가장 오래 들여다보는 것도 의료 수준 자체보다 현지 사람들의 의지와 변화 가능성이다.
의사를 남기는 사업, 마다가스카르에서 만든 변화
마다가스카르 온드림 해외 실명 예방 사업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자외선이 강한 환경으로 백내장 환자가 많지만, 정작 수술을 집도할 전문의가 부족한 현실. 단순한 의료봉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였다.
김윤섭 교수는 사업의 중심을 수술 건수가 아니라, 인력 양성에 두었다. 한국 의료진이 직접 수술을 하고 돌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 의사들이 수술 역량을 갖추고 이후에도 계속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설계한 것이다.
“수술해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현지 의사들이 직접 할 수 있어야 사업이 끝난 뒤에도 변화가 이어집니다.”
실제로 사업 초기 백내장 수술 자체가 어려웠던 아누시알라 대학병원은 현재 지역 내 실명 예방 거점 역할을 해내고 있으며, 현지 의료진이 직접 수술을 이어가고 후배 의사를 교육하는 구조도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는 이 변화를 단기간 성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한 명의 의사가 성장하고, 그 의사가 다시 다음 세대를 키우는 흐름 자체가 국제 보건의 본질에 가깝다고 말한다. 의료를 남긴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남긴 사업이었다는 뜻이다.
탄자니아, 의료를 넘어 삶의 조건을 설계하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고려대학교의료원은 올해부터 탄자니아 모자보건 사업을 시작한다. 이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축적한 경험을 한 단계 확장한 프로젝트다. 이번 사업 역시 의료 인력 양성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동시에 지역사회 문화와 생활환경까지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좀 더 입체적이다.
탄자니아는 일정 수준의 의료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산모 사망률과 청소년 임신 문제가 남아 있다. 김윤섭 교수는 단순한 의료 지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판단했다. 조혼 문화와 교육 환경, 여성의 사회적 조건까지 함께 이해해야 실제 변화가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제 보건은 문화와 분리해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외부 기준으로 바꾸라고 말하는 방식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아요. 결국 현지 사람들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사업에서는 산부인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제왕절개와 복합 질환 대응 교육을 진행하고, 한국 초청 연수와 현장 실습도 병행할 예정이다. 동시에 지역사회 안에서 청소년 임신과 여성 건강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김윤섭 교수는 국제 보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로 외부의 기준만으로 답을 정해버리는 방식을 꼽는다. 현장을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 방향부터 제시하면 결국 지속가능한 변화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래 듣고, 그들의 속도 안에서 사업을 설계하려 한다.
숫자가 아닌 흐름으로 남는 변화
국제 보건 사업에서는 흔히 수술 건수나 교육 횟수 같은 수치가 성과로 제시되곤 한다. 하지만 김윤섭 교수는 숫자로만 평가되는 사업의 한계를 여러 현장에서 경험했다고 말한다. 실제 현장에 남는 변화는 단기간 수치보다 훨씬 느리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교육도 단발성으로 끝나면 오래 남지 않습니다. 반복해서 배우고,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고,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끝까지 변화를 추적하고, 현장에서의 적용 여부를 함께 확인하는 방식을 택한다. 100명을 대상으로 얕게 진행하는 사업보다 10명이 실제로 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김윤섭 교수는 개발도상국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환경이 한 사람의 가능성을 얼마나 크게 바꾸는지를 실감한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면 만약 이들이 한국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훨씬 더 큰 역할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숫자보다 더 깊게 남는 변화를 선택하게 됩니다.”
김윤섭 교수가 말하는 국제 보건은 누군가를 돕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변화는 더디고 눈에 띄는 성과도 늦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렇게 자리 잡은 시스템과 관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지속가능한 의료는 지원 규모보다 사람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는 오랜 시간의 현장으로 증명하고 있었다.